호수 님의 줘패요 타로 스프레드입니다

 



 “한번 쯤은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 볼게.”
 하이타니 린도와 이노우에 치즈루는 폭력과 몰이해, 불쾌감과 사랑, 애욕 따위로 범벅된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자들입니다. 놀랍게도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파고들수록 허망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음에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웃음을 짓습니다. 이런 기묘한 인간관계 사이에 폭력이 자연스레 끼어들게 된 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 상황 설정.

 공간적 배경은 어디인가?
 일곱 개의 물약. 하이타니 린도의 아지트. 혹은 거처. 어디든 그가 자주 시선을 붙이고 또 몸을 뉘이는 곳. 타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쉽게 스며들지 못하는 곳. 하이타니의 특공복이, 성공과 폭력들이 멋들어진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는 곳. 그러나 이는 하이타니에게 편안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채택되지 않았으며, 이노우에 치즈루가 일방적인 욕망을 해소키 위해 한 선택들의 결과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상황에 도달했는가?
 발단, 물약의 아이. 평상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노우에 치즈루가 하이타니 린도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집요하게 물은 것이라 하겠다. 이노우에는 그날따라 하이타니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자가 경멸의 얼굴을 내비칠 때 이노우에는 그것에 상처입지 않으나, 종종 이해할 수 없음에 당혹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짜증보다도 순수한 걱정이다. 이상하다. 나는 이렇게나 사랑을 곱게 빚어다가 네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다니. 그럼 한번 쯤은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 볼게.
 전개, 황후.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만질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하이타니가 대답하지 않아도 이노우에는 그의 표정을 보고 생각한다. 아, 눈썹이 이렇게 움직였다. 아, 시선이 저렇게 움직였다. 이건 달가워하고 저것엔 관심이 없다. 그런 부분들을 뜯어보며 그 여자는 자신이 드러낼 수 있는 욕망이 거기 실존한다고 여긴다. 실존하지 않는 것을 실존한다 믿으며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것은 폭력의 형태를 띤다. 충만한 망상은 상대의 마음이 아닌 뼈를 드러내고, 하이타니 린도는 이 여자애가 어디까지 기어올라 제 피부를 득득 긁어대려고 하는지, 어디까지 두고보아야 하는지 가늠한다. 성서에서 유일신이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빚었듯이, 이노우에는 하이타니의 어떤 것들이 자신을 먹일 수 있다고 믿는다. 목을 축일 수 있다고 믿는다.
 위기, 열 개의 동전. 이러한 믿음들이 하이타니에게는 징그러울 뿐이지만 이노우에에게는 아름다운 환상이다. 색색의 알록달록한 꽃다발이고, 허리를 감싸안은 채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반려들이다. 동상이몽 이상의 괴리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노우에는 그것을 사랑으로 여기고, 하이타니는 그것을 역겨움으로 느끼는 것이 문제다. 이노우에는 하이타니의 분개를 날 것으로 본다. 날 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믿는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결국 사랑이다. 하이타니는 이노우에의 망상을 날 것으로 본다. 날 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고 감당할 생각도 없는 것을 들이밀어 피비린내 나는 쓰레기를 입 안으로 욱여넣는 일이다. 이렇듯 작은 방 안에서 일어난 느슨한 대화에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자극을 얻는다.
 절정, 여덟 개의 칼날. 긴장감이 겹겹이 쌓이고 점점 두터워지면 누군가는 흥분하고 누군가는 등골을 싸늘하게 타고 내리는 불쾌감과 위기감에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조용히 소근소근 대화 아닌 대화가 일방적으로 이어지던 방 안. 조명은 어둡고 창 밖은 까맣고 이 어렴풋한 공간 속에서 입맞춤까지는 아니어도 다정한 눈빛, 혹은 그저 의미 없는 눈빛, 본인이 사랑하고 애정하는 그 보라빛 눈동자가 자신에게 쏟아져내리기를 바라는 이노우에가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은근히, 부드럽게, 간지럽게 하이타니의 손등 위로 얹으면 하이타니는 그것을 위협적인 칼날 끝이 간을 보듯 치대는 것으로 느끼고 만다. 부드럽고 조심스럽지만 언제든 살갗을 가르고 피를 낼 수 있는. 그러므로 하이타니 린도의 “폭력”은 일종의 정당방위다. 햇빛이 비치면 눈이 감기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이.


 둘, 휘두르는 하이타니.

 그 순간 이노우에를 어떤 감정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가?
 연인. 사랑에 빠진 심장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 것인가? 상상하고 가늠할 수는 있어도 그 순간 상대의 가슴을 가르지 않는 이상 그 명확한 모습을 알 자는 없다. 그리고 말하자면, 심장은 펄떡이며 경련하는 근육 덩어리일 뿐이잖은가. 심방과 심실 안쪽의 섬유질은 매만지거나 응시하기에도 징그러울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노우에 치즈루의 맹목, 질질 흐르다 못해 흘러 넘치는 감정이며 욕망 따위들을 하이타니는 그렇게 여긴다. 사랑은 손에 쥘 수 없다. 사랑은 증명될 수 없다. 하이타니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그것이 위협적이고, 날카로우며, 자신을 불쾌하게 한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알 테지만, 하이타니 린도는 모른다. 알 필요조차 없다.

 하이타니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여섯 개의 막대. 놀랍게도 이것은 하이타니의 증오와는 다르다. 증오는 언제나 그곳에 있으며 이노우에의 행위나 존재보다는 본인의 삶이 구성하는 형태 때문이다.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는 이유야말로 이노우에 치즈루에게 있다. 그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있다. 영영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순정 만화의 주인공처럼 굴다가도, 그것을 스스로 믿다가도, 누가 보아도 비정상이라 여겨질 법한 몸짓 말투를 하고 있기에 속이 쿡쿡 찔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증오하지 않는 얼굴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하이타니 린도는 이런 여자애를 보면 울컥 치받는 것들을 참을 수 없다. 참으려 하지도 않는다. 말갛게 피어난 꽃잎인 척 하는 이 암컷 사마귀를 짓눌러 투명한 피를 내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방식의 폭력을 사용하는가?
 네 개의 칼날. 요란스럽지 않은 폭력이다. 린쨩이니 도도군이니 하는 가증스러운 이름 덕분에 하이타니는 그 여자애의 몸에 칼을 대고 싶지도 않아진다. 그것을 억제하고 싶다. 본래 도구보다는 몸을 사용하는 편이지만 유독 이 계집애에게는 그렇다.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그래서 제 살갗에 감히 그 칼날보다도 거슬리는 손길을 스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먹질을 하지도 않고 그는 이노우에의 목을 조른다. 위협적인 대사나 기합 소리도 없다. 이노우에에게 속삭이던 말들 사이로 느닷없이 흉기 같은 손이 닥쳐온다. 콱 턱 밑으로 짓쳐들어온 그것이 척추와 이어진 목뼈, 그 옆의 기도며 식도, 근육과 얇은 지방층, 살갗 따위를 단숨에 소유하듯 움켜쥔다. 콱 소리를 내며 바닥인지 이불 위인지 가구 위인지 모를 곳으로 처박는다. 이곳저곳에 머리통이 박힌다. 손목을 머리 위로 모아 쥐어잡고 검붉은 자국이 생기도록 쥔다. 제 몸보다 갸냘픈 몸체 위에 올라타 짓누른다. 섹스를 하듯이 노골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한치도 꿈틀거릴 수 없도록 압도한다. 목을 조르면 숨을 쉴 수 없는 몸이 움찔거린다. 하이타니 린도는 그제야 겨우 승리감인지 우월감인지 모를 것을 찾는다.

 쓰러진 이노우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한 개의 막대. 마지막까지도 질리지 않는지 미소 띤 얼굴로 정신을 잃은 그 여자애의 몸은 아름답고 보기 좋고 꼿꼿하다. 그것은 객관적인 판단이고, 하이타니 린도가 보기에 그것은 괴랄한 조각상보다도 더 가치가 없는 정물이다. 흑백도 못되는 흐릿한 무채색의 사물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것은 난감하지도 않다. 본능적으로 몸부림치려던 한 생명이 저항감을 잃는 순간 그것은 하이타니에게 짐이 된다. 무게가 되고 물체가 된다. 남자애는 너무도 쉽게 그 몸을 집어다 제 팔에 안기듯 걸치고 뚜벅뚜벅 걸어가 소파 위에 쉽사리 던져둔다. 꼿꼿하던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지는 것을 보고도 정리해 주지 않는다. 깨어나면 깨어날 것이고, 그러면 제 부끄러움을 알아차리겠지. 제 책임은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몸을 관리하는 자처럼 군다. 이것이 하이타니 린도의 패착이다.


 셋, 휘둘리는 이노우에.

 그 순간 하이타니를 어떤 감정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가?
 일곱 개의 칼날. 생과 사가 교차한다. 어쩌면 그것은 삶과 죽음이 아니라 생명력의 각기 다른 표현이다. 죽음은 생이 있기에 가능하고, 살고자 하는 욕구 역시 죽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노우에 치즈루가 보기에 하이타니 린도는 자신을 살려두기 위해 죽이고픈 얼굴을 가장하는 것이다. 살갗 위를 쓸었을 때 움찔거리지도 않고 가라앉은 눈빛으로 저를 관통하듯 응시하는 것은 결국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듯 제어하는 것이고, 이러한 제어는 애정이 아닌가. 사랑이 아닌가! 이노우에 치즈루는 위험 부담이라는 칼날들을 양손에 한가득 쥐고서도, 거기서 피가 흐르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그 위로 핏물이 흘러내릴 때 칼날이 어떤 빛을 내는지, 무엇을 반사하는지 따위다.

 하이타니의 폭력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두 개의 막대. 콱 목이 졸려들 때 이노우에는 놀랍게도 미래를 본다. 그것은 먼 미래의 예측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나날들에 대한 확신이다. 폭력은 시작되면 계속되고 여러해살이 풀처럼 시들었다가도 다시 봉오리를 맺는다. 꽃잎이 터져나올 때 그 화려한 무늬에 잠시 말을 잃는 것처럼 잠시 정신을 잃고 호흡을 멈추게 될 때도 이노우에는 그것이 또 다른 결속임을 안다. 깨닫고 또 흡족해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거나 불쾌해하기보단 웃는다. 슬쩍 미소를 짓고 이렇게 시작한 폭력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을지 기대한다. 언젠간 돌려줄 수 있을지도 가늠한다. 아, 이렇게 단순한 행위, 목을 조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는가. 여자아이는 호흡의 통로가 막힌 사실마저도 침범으로 인식한다. 침범은 관여고 관여는 무관심에서는 나올 수 없는 특별한 요소다.

 물리적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는가?
 운명의 수레바퀴. 단숨에, 한 번에 붙잡힌 양 손목을 그는 계속해서 바르작거린다. 하이타니 린도가 불쾌해한 것이(아니, 불쾌해했다고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극 받은 부분이라고 설명해야 명확할 것이다 이노우에 치즈루는 하이타니 린도의 폭력을 거부로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인지 여자애는 쉽게도 파악했다. 자신의 눈빛, 몸짓, 손가락이 살갗 위를 그어 만드는 작은 소름 같은 것들이 아닌가. 매번 성공하지는 못하였으나 그는 자꾸 손목을 꺾고 손가락을 굽힌다. 저를 짓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손을 대느니 자신에게 닿지 않도록 애쓴 몸을 하이타니 린도에게 붙이기 위해 애쓴다. 성공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것은 압도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억제하는 당신의 몸짓조차도 나에게는 아름다운 접촉임을 보여주는, 인지시키는 아주 기초적인 작업이다. 이노우에 치즈루는 그러한 사실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로, 본능적으로, 저를 짓누르는 손과 악수를 하려는 듯 바르작거린다.

 쓰러지기 직전에는 어떠한 상태인가?
 여섯 개의 칼날. 몸 안에서 맥동하는 수많은 체액의 흐름들이 머리를 아득하게 만들면, 이 요란한 심장 박동과 근육의 경련이 이제는 잦아들 때가 왔다는 것을 이노우에는 직감한다. 눈 앞이 아득해지고, 시야가 흐릿해지면 왠지 그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것이 또 쏴아, 쏴아, 하고 물길을 부수고 포말을 일으키는 소리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노우에가 듣는 파도 소리는 강물이 흐르듯, 저 멀리 절벽 위에서 어렴풋이 들을 수 있는, 물방울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한숨을 쉬는 소리와 같다. 컥 케헥 숨이 막히고 점점 몸의 통제권을 잃어갈 때 여자애는 신음하듯 웃는다. 닥쳐온 파도를 나누려는 듯 웃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잔잔한 수면으로 잠겨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하이타니 린도의 자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시선을 바로 한다. 남자애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DAL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