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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 령 님
灰谷竜胆
화려한 야경 속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건물 그 안으로 들어가 높은 층수에 있는 바로 들어가요. 전체적으로 흰 대리석이나 금속 장식이 많은 화려한 조명 여러 개가 있는 모습이에요. 바에는 어느 하나 제 손을 쓰지 않아도 대신할 직원이 있겠네요. 옆에 따라붙는 사람은 한 명으로 족하니, 에스코트는 필요 없다고 보내줄 것 같아요. 바 테이블은 대화가 귀찮으니 패스, 2인석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아요.
동행하는 사람 없지만 따라붙는 사람은 있죠. 비워 둔 앞자리에 익숙한 사람이 앉고 썩 달갑진 않아요. 그래도 귀찮게 다가오는 사람을 쳐낼 정도의 몫은 하니 쫓아내진 않죠. 클럽의 일도 있고 바에 자주 다닐 만큼 술에 찌들어 살진 않으니 달에 한 번… 적을 땐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할 거예요. 어릴 적부터 유명했으니 자주 가지 않아도 알아보는 사람은 있겠네요.
‘책임질 건 없으니,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고 싶을 때’ 딱 이런 말이 어울려요. 그래도 밖에서 추태를 보이는 건 꼴사나우니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겠네요. 스스로 주량을 조절을 한다기보단 단순히 안 취하는 편에 가까울지도 몰라요. 양키와 클럽 오너 둘 다 늘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되지 못하니 덤덤한 태도 뒤로 날을 세운 긴장 탓에 그렇겠죠. 하이타니가 취한다면 집처럼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세공이 들어가 화려한 글라스나, 장인이 빚어 깔끔하고 우아한 글라스. 그걸 구분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도 그런 잔은 싫죠. 이미 질릴 대로 봐 왔을 거예요. 오히려 취향이라면 기성품이나 투박한 유리잔과 같은 하이볼 글라스를 좋아할 것 같네요. 손에 꽉 들어오는 큼직하고 차가운 잔. 술을 마신다는 기분이 들잖아요.
좋아하는 술을 정해둘 이유가 있을까요? 그날그날 마시고 싶은걸, 마시고 싶은 만큼. 딱 그런 사람이에요. 어느 날은 위스키만 주구장창 마시더니 언제는 보드카 칵테일만 마시고 언제는 또… 아무튼, 시시각각 바뀌는 취향을 어떻게 하나로 퉁칠 수 있을까요? 굳이 따진다면, 깔끔한 맛을 좋아하죠. 입에 남는 맛이나 향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술이요. 싸구려 술도 별로. 안주는 멜론 프로슈토처럼 달콤 짭짤한 안주를 좋아할 것 같아요. 단 것, 짠 것 둘 중 어떤 것을 먹고 싶어도 충족되니까요.
첫 번째 잔은 ‘진 피즈’예요. 진과 레몬 주스, 설탕과 탄산수가 들어가는 가볍고 깔끔한 칵테일이죠. 진 특유의 풍미는 레몬과 같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과 정말 잘 어울리는데, 자칫 드라이하고 신맛만 날 칵테일을 적당량의 설탕이 밸런스를 잡아 줘요. 첫 잔 치고 심심할 수 있는 목 넘김도 탄산이 있어 적당한 자극을 주어 좋아요. 두 번째 잔은 ‘폴라 베어’예요. 보드카, 블랑 베르무트, 민트 리큐르, 비터가 들어가는 꽤나 독한 칵테일이죠. 보드카의 심심한 맛을 베르무트와 비터가 잡아 주고 떨떠름한 맛을 민트로 상쾌하게 풀어내요. 느긋하게 술을 넘기고 입에 남는 민트 향이 다시 잔에 손을 옮기도록 유도하죠. 세 번째 잔은 ‘모히토’예요. 럼과 라임, 민트, 탄산수가 들어간 깔끔한 칵테일이죠. 달달한 향의 럼을 라임의 쌉쌀한 신맛이 잘 잡아주고 단순한 향미는 민트가 들어가 한 층 풍부해요. 모히토의 진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변화한다는 점일까요. 처음에는 신맛이 도드라지더니 뒤로 갈수록 천천히 라임과 럼의 단맛이 올라오거든요. 한 잔을 시켜도 여러 잔을 마시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해요. 달달하면서 깔끔한 맛의 칵테일을 여유 있게 마신다면 좋겠어요.
테마 칵테일은 ‘Spiked Creme De Violette Lemonade’예요. 투명한 레몬색의 칵테일 아래로 엷은 보랏빛이 감돌아요. 가니쉬로는 용담 꽃이 하나 올라가죠. 생긴 것부터 맛까지 어느 하나 모나거나 특별한 곳 없이 마지막 입에 남는 잔향까지 섬세한 터치로 이루어진 칵테일이에요. 무거운 맛은 아니지만 가볍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죠. 이건 하이타니 린도 그 자체를 닮았어요. 우아하고 섬세한 미인, 묵직하고 소위 남성적인 외견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인상. 제멋대로의 성격은 칵테일에 은은하게 맴도는 신맛을, 여전히 사람과 깊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칵테일의 드라이한 맛을 닮아요. 어쩌면 이노우에와 더 긴밀한 관계는 될 수 없다는 것도 같이 뜻하겠죠. 가니쉬로 올라간 용담 꽃은 하이타니의 이름에서도 알아볼 수 있어요. 청푸른 빛의 꽃은 칵테일의 옅은 색을 집어삼켜요. 이건 하이타니가 지금까지 갖고 싶던 것, 하고 싶던 것은 전부 해왔던 부분을 닮았죠. 그리고 이 모습은 평소 보이는 모습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 섬세한 터치와 향이 하이타니 린도를 닮은 칵테일을 추천드립니다.
井上ちずる
번잡한 길거리 눈이 아픈 네온사인 사이 지하로 내려가는 검은 계단이 하나. 농담이라도 고급스러운 바라고 할 순 없어요. 검은 인테리어에 쨍한 색상의 불빛들이 건물 밖과 내부의 경계를 흐리죠. 노래도 사람 소리도 꽉 차서 시끄러운 바에 들어가면 복잡한 생각을 잊을 수 있어요. 하이타니를 넘어뜨릴 계획이나, 하이타니가 한 번 돌아봐줄 계획… 등등. 이런 생각을 하기에 제격이죠.
하이타니가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않고, 이런 바에 끌고 온다면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니게 되니까요. 늘 혼자 바에 들어오고 합석은 사절, 술을 사주는 사람도 사절. 돈이 없지도 사람이 궁하지도 않은걸요. 달달한 술 한 잔과 안주 하나 그리고 시끄러운 소음. 하이타니가 없다는 점에서 한참 모자라지만, 그 외 다른 건 충분해요. 어쩌면 하이타니와 함께 술을 마실 날을 생각하며 그런 연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귀엽게 취한 모습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하이타니가 없는 이런 허접한 바에서 취할 생각은 없어요. 단순한 고집이죠. 그래도 한 번 마음 먹은 건 변하지 않는 탓에 다행히 이런 바에서 취한 적은 없어요. 자신의 주량을 꿰고 있고 언제부터 얼굴이 붉어지는지 언제부터 자제력이 없어지는지…. 하이타니의 앞에선 귀여운 여자아이로 있고 싶어서, 하이타니가 없다면, 하이타니가 없으니까! 이런 이유로 역시 과하게 취하는 일은 없어요.
가는 손가락이 잘 보이려면 스템이 길고 예쁜 잔이죠. 흔한 와인 글라스부터 마티니, 소서, 마가리타 등등. 제가 제일 잘 보여야 하니 세공 없이 깔끔한 잔으로. 취향을 묻는다면 ─하이타니가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를 대며 투박한 하이볼 잔을 얘기해요. 좋아하는 걸 공유한다, 이건 상대와 꽤나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상큼한 과일 맛의 달달한 칵테일을 선호할 것 같아요. 베이스는 보드카나 리큐르, 럼 등등… 가리는 건 없어요. 독한 술을 마시고 키스하면 입에서 알코올 향이 난다던데 키스는 달콤한 과일 향이 좋지 않겠어요. 그러니 입에 남는 맛과 향이 오래가는 술을 좋아할 거예요. 안주도 별 차이 없이 향이 없거나 달콤한 계열. 꾸릿한 치즈와 술을 곁들이는 건 좋아하지만 입에 그런 향이 남는다면 별로죠. 크래커나 미니 프레첼, 초콜릿 등등… 심플하고 기본적인 안주와 함께 하겠네요.
첫 번째 잔은 ‘핑크 레이디’예요. 진, 애플 잭, 레몬, 그레나딘 시럽과 계란 흰 자가 들어간 칵테일이죠. 특유의 떨떠름한 신맛은 평소 선호하던 맛과는 거리가 있어요. 그래도, 입안에 남는 기분 좋은 진의 향은 썩 마음에 들죠. 첫 잔을 단맛이 없는 칵테일을 마셔 다음 잔을 더욱 달콤하게 느낀다면 좋겠어요. 두 번째 잔은 ‘블루 라군’이에요. 보드카와 블루 큐라소, 레몬 주스가 들어간 깔끔한 칵테일이죠. 단맛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첫 번째 잔에 비해서는 달콤한 편이에요. 시트러스 계열의 산미와 큐라소의 단맛이 적당히 어울려 맛있는 칵테일이 되죠. 세 번째 잔은 ‘피치 크러시’예요. 복숭아 리큐르, 스윗 앤 사워 믹스, 크랜베리 주스가 들어간 가벼운 칵테일이에요. 도수도 낮고 맛은 달고 이름처럼 복숭아 맛만 나는 칵테일은 아니지만 다양한 향과 맛이 나는 쪽이 즐거우니까요. 조금 드라이해진 입을 단맛으로 덮어 버린다는 표현이 잘 어울려요.
테마 칵테일은 ‘Golden Dream’이에요. 황금빛 꿈, 황홀경, 달콤한 칵테일은 그런 걸 상상하기 좋죠. 강렬한 오렌지의 맛에 부드러운 크림과 바닐라. 쉽게 표현하자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오렌지를 더한 맛과 닮아있어요. 이노우에가 하이타니와 사랑을 나누는 걸 꿈꾼다면 그 상황을 골든 드림이라 뜻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하이타니의 옆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이 상황이 골든 드림이라 할 수 있겠죠. 강렬한 오렌지향은 이노우에의 숨김없이 직진만 하는 성격을 보여 주고, 부드러운 크림과 바닐라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로 보이고 싶은 걸 뜻해요. 칵테일의 부드럽고 노란빛은 하이타니의 머리색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고요. 황금의 땅 엘도라도, 매력적이지만 존재하지 않고 다가가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 가질 수 없다면 죽여 버리겠어, 하지만 하이타니를 죽일 순 없으니 다가오는 사람을 죽여야죠. 이런 의미에서 황금과 하이타니 린도 그리고 이노우에 치즈루는 꽤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이름과 맛이 이노우에 치즈루를 닮은 칵테일을 추천드립니다.
灰谷と井上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드물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동행을 뜻하는 것은 아니죠. 스토커가 사랑하는 상대 옆에 붙어 다니는 것을 스토킹이라 부르지, 동행이라 부르진 않으니까요. 술집에서도 여전해요. 하이타니가 들어간 술집에 당연하다는 듯 따라붙죠. 서로가 신경 쓰이냐 물으면 당연하죠.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고, 불편한 상대가 앞에 있는데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어요. 심도 있는 얘기를 할 사이도 아니니 늘 하는 행동과 별다를 것도 없어요. 특별한 추억보다는 조금 다른 일상 같은 느낌이죠.
서로의 앞이라고 마시는 술에 큰 변화는 없지만 이노우에는 하이타니가 시킨 술과 닮은 술을 시키지 않을까 싶어요. 적당한 술을 주문하고 적당한 안주를 주문하고 손이 가는 대로 마시고 먹어요. 하이타니가 편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보면 이노우에가 어느새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아 있어요. 들고 있는 술잔을 뺏어 마시기도, 스스럼없이 구애를 하기도 하죠. 어릴 적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남들과 이노우에에게 있어 로맨틱한 장면이 하이타니에겐 썩 달갑지 않게 다가와요.
귀엽게 취한 모습을 보여주기엔 그만큼 똑똑하지 못하고, 마음 놓고 취하기에는 집이 아니죠. 둘 다 술을 마셨다는 자각은 있지만 취한 건 아니에요. 당연하게 풍기는 술 냄새가 둘이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죠. 그러니 술을 마셨다고 해서 썩 관계에 변화가 생기진 않아요. 꼭 창과 방패와 같은 관계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라붙는 건 당연한 일. 그러니 바에서 이동하는 하이타니에게 따라붙어요. 바에서 나온 뒤에는 나이에 맞지 않는 욕설을 하며 밀어내기도 하지만 그뿐이고 떨어지진 않죠. 평소와 아주 조금 다른 일이 있다면 집까지 따라붙는 이노우에를 떼어내지 않아요. 못했다고 하는 편이 가까울까요. 마음을 준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아주 약간의 신뢰라면 할 수 있죠. 여성이 믿음직스러워서는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행동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감각이죠. 그러니 집에 들어온 뒤라면 조금 풀어져서 뭘 하고 싶은지 대놓고 물어보기도 해요. 해 주겠다는 뜻은 아니고, 내키면 하는 거고,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거죠. 평소 구애는 거침없이 하고 있으면서 정작 이런 질문에는 잠시 멈칫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무얼 먼저 말해야 할지, 또 무얼 말해야 하이타니가 승낙할지 머리를 빙빙 굴려가며 고민하죠. 겨우 나온 대답이 같이 자자 정도의 말이면 좋겠어요. 섹슈얼한 의미가 될 수도 단순히 한 침대에서 자자는 의미가 될 수도 있죠.
밤새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은 여전하죠. 집에 들어온 뒤 풀어진 것은 맞지만 맨정신이 아니었다고 할 만큼은 아니니 둘 다 어쩌다 무슨 일을 했는지 전부 기억해요. 밤에 무슨 일을 했던 수치심 없이 옷을 벗어 던지고 이불로 돌돌 싸매서는 ‘어제 좋았어?’ 하고 묻는 스토커와 ‘뭘 했다고 이래?’ 하면서 성질내는 남자. 여전히 차이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