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本木センチメンタル

W NANA

 

 

 

 솔직히 말하자면 이노우에 치즈루는 롯폰기라는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근 들어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관둔 건 아니다. 롯폰기는 이노우에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다. 도쿄에 있는 스물세 개의 구 중 롯폰기를 가장 좋아했다. 땅값이 비싸서 롯폰기에 살게 된다면 성공한 사람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속물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롯폰기에 있는 건물 중 하나가 유달리 마음에 든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온 좋은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이노우에의 부모님은 롯폰기로 외출을 나오는 것보단 우에노 동물원에서 함께 수달을 보고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즉, 그녀의 부모님은 집안 사정에 맞지 않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가정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롯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발랄한 여자아이라는 이노우에의 이미지와 퍽 잘 어울렸으며 동시에 어울리지 않았다.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를 올려 본다. 건물의 끄트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하이타니 씨랑 왔었던 적 있지. 롯폰기에 오면 소년원에 있는 하이타니 린도가 끊임없이 생각나서 이따금 울고 싶어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자동차가 뱉어내는 배기가스가 섞인 뜨거운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고 빠져나갔다. 이노우에가 롯폰기를 좋아하며, 싫어하게 된 이유는 모두 하이타니 린도에서 비롯되었다. 하이타니 린도가 있는 롯폰기를 사랑한다. 동시에 하이타니 린도가 없는 롯폰기가 싫었다. 사소하든 사소하지 않든 그녀의 호불호는 전부 하이타니에게서 시작되었고 끝을 맺곤 했다. 힐스 모리 타워를 가만히 서서 올려 보고 있으니 눈이 시큰거렸다. 하이타니에게 보낸 편지는 약 백 통이 넘었다. 지금도 밤새워서 쓴 편지를 붉은색 우체통에 넣고 온 참이었다. 답장은 없었다. 잘 지내고 있다든가, 귀찮으니 편지를 그만 보내라는 내용을 담은 것조차 오지 않았다.

 지금의 우울과는 퍽 모순적이지만 이노우에는 돌아오지 않는 답장이나 면회를 거절당하는 것이 딱히 슬프지 않았다. 하이타니 린도는 이노우에에게 있어 수줍음이 많은 DK에 가까웠다. 타인보다 더 겉멋에 신경을 쓰는 편이니까, 관리하지 못해 후줄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 게 틀림없었다. 그런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의 우울은 하이타니에게서 완고하게 거절당한 것이 아닌 그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하이타니 씨가 보고 싶다. 함께 코스모 월드에 있는 대관람차를 봤었을 때, 무척 기뻤었는데. 어깨에 멘 가방의 끈에 손을 얹는다. 가방 안에는 하이타니에게 쓸 편지를 위해 산 편지지와 볼펜, 귀여운 스티커 따위가 들어있었다. 우울해할 시간은 없었다. 하이타니가 소년원에서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일주일. 남은 시간 동안 꾸준히 편지를 보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만나주지 않을 걸 알고는 있지만, 면회를 신청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됐다. 더군다나 이노우에는 곧 소년원에서 나온 하이타니에게 줄 선물을 골라야 했다. 한참 멈춰 있던 발을 뗀다. 딱딱한 구두 굽이 흙먼지가 이는 아스팔트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추억을 불러오던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를 지나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지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인파 사이로 하이타니가 보이지 않았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흰 피부에 내려앉은 따가운 햇볕. 들어선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하이타니가 없어진 롯폰기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상황과 다른 일상에서 나오는 간극에 기분이 조금 더 울적해졌다.

 

 

 롯폰기에 가고 싶지 않은 이노우에가 롯폰기로 온 첫 번째 이유는 하이타니다. 하이타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노우에가 있는 곳으로 와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노우에는 하이타니를 만나기 위해 그가 자주 있는 롯폰기나 요코하마에 자주 들렀다. 천축에 속하지 않을 때는 롯폰기로, 천축에 속했을 때는 요코하마로. 길의 끝에는 언제나 하이타니 린도가 서 있었다. 이노우에는 오로지 그를 만나기 위해 히비야 선이나 오에도 선의 전철을 타곤 했다.

 롯폰기로 향한 두 번째 이유는 오늘은 롯폰기가 싫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오늘은 하이타니가 출소한 날로 이노우에의 예상일 뿐이지만, 아마 그는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바로 롯폰기로 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품에 편지나 면회 신청서, 선물 따위가 든 쇼핑백을 품에 안은 채 롯폰기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쇼핑백을 품에 안고 있긴 했다. 그녀가 안고 있던 것은 바닥에 떨어져 흙먼지가 묻거나 지나가는 인파에 의해 밟힌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바닥을 내려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아스라이 멀리 하이타니에게 닿아있었다. 평소처럼 들뜨지는 않았다.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 쥔다. 적당한 길이의 손톱이 손바닥의 여린 피부에 파고들었다. 하이타니 씨, 머리가 전보다 길었네. 짤막한 감상평 뒤로는 우울이 따라붙었다. 하이타니의 옆에 서 있는 장발의 미인에 시선이 향했다. 그녀의 볼이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에 비해 하이타니는 귀찮기 짝이 없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하이타니 씨.”

 오랜만에 불러보는 호칭을 입에 담는다. 이노우에의 말은 거리의 소음에 의해 금세 지워져 곧 사라졌다. 손을 쥐었다가 편다. 상체를 굽혀 떨어진 물건을 줍는다. 구겨진 쇼핑백에 더러워진 물건을 담으며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조금 울적할 뿐이었다. 그것마저 그를 만났다는 기쁨에 가려졌다. 이노우에에게 있어 하이타니 린도란 그런 존재였다. 어떤 불안도, 슬픔도 하이타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라지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를 등지고 서 있는 하이타니를 본다. 편지는 읽었을까? 반송된 편지에는 하나같이 연 흔적이 없었다. 면회 신청서는 사인도, 거절 사유도 적히지 않은 채 이노우에 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랑은 한없이 헌신적이지만 이따금 지독하게 이기적인 감정이 되곤 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처럼 굴면서도 사랑하는 상대에게 보답받는 걸 은연중에 기대하게 된다. 옛날의 이노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의 이노우에는 그러했다. 다 구겨져 끄트머리가 찢어진 쇼핑백을 품에 안는다. 입술의 끄트머리를 위로 올린 뒤, 하이타니가 있는 쪽으로 느리게 걸어간다.

 “하이타니 씨!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치즈는 무척 잘 지냈어! 있잖아, 있잖아. 치즈 보고 싶었어? 치즈는 하이타니 씨가 무척, 엄청,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귀찮은 게 또 왔네.”

 “귀찮은 거라니 너무해!”

 “맞잖아. 스토커니까.”

 “자꾸 그렇게 말하면 치즈 울어버린다? 길거리에서 엉엉 울어버린다?”

 “울든가.”

 목덜미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얕은 한숨을 뱉어냈다. 하이타니의 시선이 이노우에의 뺨에서 그녀의 품에 들린 찢어진 쇼핑백으로 향했다. 그건 뭐야. 하이타니가 내보인 작은 관심에 이노우에의 표정이 밝아졌다. 편지야. 평소와 달리 짤막하게 말을 내뱉는다. 이노우에의 손목에는 흰 붕대가 매어져 있었다. 하이타니는 부러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편지라는 말에 그래? 하고 답한 뒤, 보인 관심을 거두었다. 그의 시선이 잠깐 닿은 손목이 간지러웠다. 드럭 스토어에서 급하게 산 싸구려 붕대의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이노우에는 알 수 없었다. 하이타니와 이노우에가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잠시 투덜거리더니 인파 속으로 섞여 사라졌다. 하이타니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눈으로 좇다가 다시 이노우에를 바라보았다.

 “또 스토킹했냐?”

 “아니야~. 우연인걸. 이 말은 즉, 하이타니 씨와 치즈의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

 “지랄.”

 하이타니는 귀찮았다. 출소하고 나서 롯폰기에 오자마자 엉겨 붙는 여자나 아는 척을 하는 양키들. 갑작스레 변화한 도심의 풍경에 익숙해지는 것들. 그 모든 것이 짜증을 불러왔다. 시끌벅적한 것은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통상적인 사고나 개념에서 벗어난 하이타니에게도 달갑지 않았다. 입을 닫고 있는 하이타니의 옆에 선 이노우에는 검지로 최근 생긴 건물이나 카페 같은 것을 가리켰다. 저기 하이타니 씨와 같이 가보고 싶어~. 따위의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한참 이노우에의 말을 듣고 있던 하이타니는 윗입술을 느리게 뗐다.

 “손목에 붕대는 뭐야.”

 “……하이타니 씨, 지금 치즈 걱정해준 거야!? 걱정한 거지? 응? 맞지?”

 “괜히 말했네.”

 “치즈 엄청 기뻐! 하이타니 씨가 걱정해준 날이니까 다이어리에 따로 써줄래. 이거로 우리 둘만의 추억이 더 늘어났어!”

 “너만의 추억이겠지. 그것보다 붕대 뭐냐고, 물어봤잖아. 대답이나 해.”

 이노우에는 드물게 하이타니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내놓는 대신 쇼핑백에서 구겨진 편지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하이타니는 이노우에가 건넨 편지를 유심히 살폈다. 소년원에서 받았던 편지봉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JK가 좋아할 만한 분홍색에 작은 하트 패턴이 들어간 봉투였다. 열어봐. 이노우에의 말에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녀의 말에 따르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편지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얇은 종이를 찢어낸다. 작은 소리와 함께 반으로 찢긴 종이는 아스팔트 바닥 위에 떨어졌다. 읽지 않은 것에 속상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하이타니 앞에서 형편없이 울거나 미간을 찡그릴 정도는 아니었다.

 “붕대랑 편지랑 무슨 상관인데. 피로 편지를 쓴 거야? 기분 나빠.”

 “어떻게 알았어!? 하이타니 씨, 드디어 치즈에게 관심 가지게 된 거야? 치즈 기뻐!”

 “진짜 썼냐?”

 “응! 출소한 하이타니 씨에게 변하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힘냈어! 치즈 장하지? 머리 쓰다듬어줘. 잘했다고 해줘.”

 몇 달이 지나면 대도시인 롯폰기도, 사람들 사이에서 도는 유행도 변한다. 그 중 변치 않는 건 이노우에일 거다. 하이타니는 그게 퍽 거북했다. 기분 나쁜 여자. 미간을 찡그리고 등을 돌렸다.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자 이노우에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하이타니를 위해 쓴 편지가 하이타니에 의해 찢어지고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밟힌 채, 아스팔트 도보 위에 방치되었다. 그걸 힐끗 보다가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하이타니의 긴 머리가 허공에 넘실거린다. 따끔거리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한 감촉을 애써 무시한다. 하이타니 씨, 아까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여자친구야? 그녀의 말에 하이타니가 얕은 한숨을 뱉어냈다. 너처럼 귀찮은 여자야. 그것보다 너 내 일에 신경 좀 꺼라. 그는 말을 끝으로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내리눌렀다. 침묵을 고수하는 태도에 이노우에는 그를 대신해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하이타니 씨를 사랑한다고 적었어. 하이타니 씨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걸 적었어. 예를 들자면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 요코하마의 대관람차. 음이 경쾌한 팝송. 그런 것들. 이노우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높았고 밝았다. 하이타니는 들뜬 기색이 역력한 이노우에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망할 스토커. 짜증스레 뱉어낸 말에 이노우에는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하이타니 씨도 좋아해!”

 “난 네가 죽을 만큼 싫어.”

 “죽으면 안 돼, 하이타니 씨! 치즈랑 결혼해야지!”

 “누가 해준대?”

 “분명 언젠가 그렇게 될 거야. 치즈는 그렇게 믿고 있어.”

 이노우에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보라색이 사그라들었다. 햇빛을 받아 미약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안에는 하이타니의 뒷모습이 맺혀있다. 하이타니 씨랑 오랜만에 만나서 기뻐. 이노우에의 말에 그는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난 너랑 오랜만에 만나서 기분이 나빠. 스토커. 짤막한 말을 발음한 목소리엔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짓궂은 말에도 서운하진 않았다. 다소 걸음이 빠른 하이타니와 발을 맞춰 걸으며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하이타니 씨, 정말 좋아해! 하이타니의 미간이 아까보다 더 찡그려졌다. 소년원에 다녀온 뒤, 변한 롯폰기처럼 이노우에 또한 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빌어먹을 스토커. 짜증 나고 기분 나쁜 여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더 빨리한다. 롯폰기의 바람은 그가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보다 차가웠고, 건조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배기가스가 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고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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