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마귀의 사랑

W 자철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때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치즈루는 이 사실을 11살에 처음으로 알았다. 8월 여름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데려다준 공립 도서관에는 애들이 많았다. 어린이 도서실은 다른 층보다 소란스러웠지만, 치즈루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삽화가 잔뜩 그려진 곤충도감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사마귀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발치에 끌리는 실내화 가방을 타고 교실까지 따라온 사마귀는 기세 좋게 책상 위에서 위용을 뽐냈다. 주위에 있던 모든 애들이 비명을 질렀다. 치즈루 역시 덩달아 비명을 지르긴 했으나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저게 언제부터 자기를 따라왔는지 궁금해했다. 창밖으로 떨어진 사마귀는 또 누군가의 실내화 가방에 올라타게 될까? 삼각형의 작은 머리와 금방이라도 푸드덕하며 날아오를 듯한 날개가 자꾸 어른거렸다. 정말 징그러워! 그래도 자꾸 생각나. 치즈루는 처음으로 마냥 좋은 것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꺼림칙한 일들만 차곡차곡 쌓이면 어떡하지? 끔찍한 추측이었다. 따라서 아이는 사마귀를 좋아해 보고자 마음 먹었다. 더 좋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결론은 명쾌했다. 치즈루는 사마귀에 관해 더 잘 알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치즈루의 조막만 한 손안에서 사마귀에 관한 이야기가 넘어가는 연유였다. 삽화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치즈루는 더럭 거부감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그림이 꿈틀거리며 투명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를 성싶었다. 정말 싫어! 그래도 난 좋은 일들만 기억하고 싶어. 어린애의 치기가 책장을 좀 더 넘길 기회를 줬다. 사마귀는 죄 녹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갈색도 있다고 한다. 그것들은 자그마한 머리를 180도나 회전시킬 수 있었고 커다란 눈이 달린 만큼 미세한 움직임도 잘 잡아낸다고 적혀 있었다. 손바닥, 아니 치즈루의 체감상 거의 팔뚝만 한 사마귀들은 용모와 어울리게 육식을 한다. 커다란 앞다리로 먹잇감을 잡아채 오독오독 씹어먹는다는 설명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거의 마지막 장에는 사마귀들이 어떻게 짝짓기하는지 적혀 있었다. 어린애에게 가장 자극적인 내용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책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 난폭한 곤충들은 서로를 좋아할 때 동족상잔을 해버리고 만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짝짓기를 사랑하는 존재끼리 하는 행위로 인식한 치즈루에게는 몹시 큰 충격이었다. 잡아먹는다! 인간으로 치자면 엄마와 아빠가 포옹하는 순간, 아빠의 귓불을 엄마가 씹어 삼키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치즈루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덮었다. 아! 잔인한 사마귀들! 징그러운데다 자비까지 없었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말도 깜빡 까먹은 채 도서관을 빠져나와 집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러다가 결국 보고 만다. 빌라 앞 화단에서는 온갖 곤충들이 득시글거렸다. 치즈루 역시 이 앞에서 흰 나비 몇 마리쯤은 잡았다가 놓아주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사마귀가 화단을 차지한 채였다. 아이는 그것들이 그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넋 놓고 보았다. 땡볕 아래서 땀이 쉴 새 없이 났지만,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암컷 사마귀가 짝이었던 먹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나서야 치즈루는 비척이며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땀 범벅으로 돌아온 치즈루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주고 얼음을 띄운 오렌지 주스를 먹여 주었다. 여름철 해 아래 오래 있었던 탓인지 치즈루는 그날 저녁부터 3일간 더위를 먹어 심하게 앓았으나 이후에는 이상하리만치 더위에 강해졌다. 아이가 여자애가 되고 여자애가 여학생이 되는 시점까지, 더위는 치즈루에게 존재하지 않는 단어 같았다.

 

 그래, 그러니까 말이다. 

 더위나 사마귀,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노우에 치즈루가 하이타니 린도를 만나기 전까지만!

 

 이노우에는 이제 암컷 사마귀를 이해한다. 그렇고말고. 소유하고 싶었던 거지? 가지고 싶었던 거야. 그러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어서,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고 애원하고 열망하게 되니까, ‘섭취’만이 완전한 방법인 거다. 물론 하늘이 조각나도 치즈루가 사마귀처럼 굴 일은 없었다. 아주 자그만 해악이라도 린도를 향하게 된다면 그는 단숨에 미쳐버리고 말 터다. 누가 감히 나의 완전무결한 신에게 흠집을 낸단 말인가. 하이타니 린도, 그가 자신을 스스로 해쳐도 애간장이 다 녹을 만큼 고통스럽고 안달 나는데 하물며 타인이 그를 훼손한다? 타인이 누구든지 용서할 수 없었다. 린도의 형인 하이타니 란이나 천축의 총장인 백발 남자라도, 설령 이노우에 치즈루여도 손속에 자비는 없었다. 종교인들이 바라는 신실한 마음이 치즈루에게 있었다. 개인을 신으로 삼는 동시에 성역으로 삼는 일을, 치즈루는 아주 쉽게 해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치즈루가 띈다면 그는 심문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신이 아닌 존재를 신으로 삼고 열렬히 따르는 자가 이단이 아니면 무엇인가. 다만 린도를 향한 모든 해악을 배제하고 싶은 이노우에라고 할지라도, 이해하고 만다. 오히려 치즈루이기에 이해한다. 삼키고 뱃속에 넣어서 하나가 되고 싶은 잔혹한 마음을 납득했다. 그를 한순간이라도 보지 못하면 매일이 지옥 같겠지. 제 뱃속을 갈라내어 삼킨 연인을 다시 꺼내고 싶어질 것이다. 다만 제 뱃속에 있는 연인과 자신은 영원히 함께이리라. 동족을 상잔하는 일은 육신만 집어삼키는 데서 제한되지 않는다. 영혼을 포크로 찍어 혓바닥 위로 올리는 행위다. 남자는 여자의 뱃속과 영혼 안에서 영원히 보호받게 된다. 아! 그러니 이해하고 말지. 이해해버리지! 이노우에는 린도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위에서 내리면 축복이지만 위로 향하면 구걸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구걸하되 매일이 성대한 연회와 같다면, 무엇이 치즈루를 병들게 할까? 그는 전혀 지치지 않는다. 당신을 사랑해. 린도를 사랑해. 린쨩을 사랑해.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저주였다. 들끓고 풍부한 마음이 고작 몇 개의 획에 갇히는 게 소름 끼쳤다. 이 마음을 완전히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치즈루는 하이타니 란의 뒤를 밟는다. 린도가 아닌 란이다. 치즈루가 다시 더위를 먹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린도를 만난 이후로 시작된 더위였다. 사계절 내내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찼다. 피부가 차게 식고 몸속의 피가 뜨거웠다. 치즈루는 하고 싶은 일이 지나치게 많았다. 린도의 어깨에 매달려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사내의 귓바퀴에 입을 바짝 대고 귀여운 목소리로 온갖 말을 속살거리고 싶다. 그의 발을 젖은 머리카락으로 닦아내거나 몸을 갈라 그가 잠시 쉴 곳을 마련해줄 날을 고대했다. 나는 린도의 일부가 되고 싶어. 여자는 자신의 신과 엇비슷한 번제물을 잘 알고 있다. 그와 같은 태를 빌어 탄생한 자, 린도와 피와 살을 나눈 남자를 안다. 서로의 일부를 섭취하지 않았음에도 공유하는 연대를 치즈루는 뺏어오고 싶었다. 이노우에는 사마귀를 이해하나 사마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 아이에게 선택지는 하나다. 그와 피를 나눈 남자를 약탈하여 약간의 비슷한 효과를 내는 거다. 하이타니 란은 치즈루 같은 여자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연약하기에 귀찮게 손속을 보여줄 가치조차 없는 거다. 그러므로 가능할지도 몰랐다. 살인이 아니라 제사를 위한 단계 중 하나일 뿐이다. 치즈루는 스스로 세뇌며 손안의 단도를 단단히 쥐었다. 한밤에도 밝은 시야마저 자신이 제물을 처리하는 걸 돕는 듯 느껴졌다. 이제 칼을 치켜들고 그에게 달려들면 된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죽는 사람을 자신일지도 모르지만, 무엇이 문제인가. 그에게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제대 위 단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건 당연했다! 이노우에는 제 마음과 행동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발끝에 힘을 줬고 몸은 앞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그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치즈루를 막을 수 있는 건,

 

 이노우에.

 신의 음성만이 유일하다.

 

 신자는 어디서든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치즈루에게 멀어지는 하이타니 란 따위, 이제 상관없다. 냉큼 뒤를 돌아 자신을 부르는 사내를 바라본다. 목을 긁어 튀어나온 목소리는 몹시 낮다. 이노우에의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목을 옥죄는 달콤한 음성이다. 떨림 없는 목소리에서 넘실대는 건 명확한 분노였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일로 전의를 무력하게 만든 사내의 이름은 하이타니 린도다. 치즈루는 불쾌한 얼굴에서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아가는 린쨩을 빠짐없이 눈에 담는다. 시퍼렇게 빛나는 눈을 보니, 명석한 연인은 모든 사태를 파악한 모양이다. 이노우에 손에 들린 단도의 날이 유난히 반짝인 탓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여름을 몰고 온 사내를 황홀하게 응시한다. 살의를 손쉽게 허물고 갈비뼈 안쪽부터 충만함을 크게 부풀리는 건 위대하고 발음하기에 아쉬운 것이다.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게 단지 사랑이라니. 영혼이 전율하고 있었다. 감탄하지 않고서 참기가 어려웠다.

 

 “사랑은 참 우아하지.”

 

 이노우에는 오늘도 영혼과 사랑을 맞바꾼다.

 

 

 

 

 

DAL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