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남극성

 

 

 

 하늘이 은백색으로 보일 정도로 구름이 태연히 점령해 버린 날씨였다. 저 천공 언저리에 자리한 희뿌연 대기층이 은밀히 창공을 뒤덮어, 볕이 그리 살갑게 쏟아지지도 않는, 도심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기후 조건. 안경알을 건드리는 자외선에 성가셔할 일 없다는 점에서 약간의 효용을 한다,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요코하마의 번영을 증명하듯 제자리에 선 고층 빌딩 사이에서는 이따금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이 모서리에서 휘잉, 몰아쳐서 준비되지 않은 행인에게 불상사로 다가가곤 했다. 번잡함으로 완성되는 도심의 일상이었다. 특별함을 더할 일도 뺄 부분도 없는 이 하루는, 천축의 다음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의 한 단과도 같았다. 특별한 사건의 날을 위해 안배된 가교인 셈이니, 기약된 재미와는 먼 일과가 잠자리에서 일어난 순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덥고 미적지근한 바람이 술렁거리듯 불어와선, 멋대로 머리채를 슬쩍 헤집어 관자놀이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순간의 요코하마에 하이타니 린도는 존재했다. 고급 명품점이 즐비한 거리에 그 세련됨을 방증하듯 고급 레스토랑과 미술관 따위가 존재하던 롯폰기의 세련됨은 오셀로의 뒷면처럼 손꼽히는 유흥가로서의 입지와 단단히 붙어 다녔는데, 새로 발을 디딘 이 구역은 다소 이국적인 풍모가 간판이나 중국인 거리, 수상 버스가 나다니는 개발 지구 따위의 특이사항을 제하면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수평으로 뻗어 나가는 이 탐욕스러운 도시는 팽창의 증거를 특유의 색, 이를테면 중국식 거주지나 가두 장식물 따위로 대변되는 건물 따위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고, 수많은 인구가 분 단위의 밀물과 썰물을 자아내며 이동 중인 참이었다. 익숙한 공기였다. 적어도 하이나티 린도에게는, 예의 번화함이 절대 감동을 안겨주는 요인은 아니었기에, 아마 그를 조금이라도 봤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면, ‘흐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표정을 자연히 고수하는 중이었다. 유별난 흥미를 표한다곤 절대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하이타니 형제를 둘러싼 지점의 공기는 조금 달랐는데, 저녁까진 다소 멀었대도 유동 인구가 무서운 기세로 넘나드는 요코하마 역의 근방에서 그들의 반경 1~2m 주변에 들어오는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그들에게 능통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기에, 무지한 시민이라면 특유의 분위기만 보고서 꺼리는 연유로.

 린도의 흥미 회로에는 일종의 비보가 날아든 셈 되겠다. 도시의 얼룩처럼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시시한 불량배 지망생들이야, 정오의 시축을 지나 해의 기척이 서쪽으로 점차 기우는 이 시간에는 넘쳐나기 마련이었으나, 요즘처럼 항쟁이 벌어지는 시기에 시시한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은 유난히 줄었다. 양키 풍을 보호색처럼 두르고 다니는 잡어들일수록 시류의 혼탁함에는 예민한 법이었다. 뒷골목의 사정을 나름 꿰고 있다면야 쉽사리 건드리기 힘든 명성 탓에라도, 그와 나란히 나아가는 형제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고, 오늘의 표적물도 보이지 않았다. 기습이 결행된 게 얼마 전이고, 도만 측에서도 즉각 맞대응을 벌이기엔 주축 날개가 몇 어그러진 참이니. 오늘의 하이타니 린도는, 말하자면 무심히 거리를 방랑하는 데에 가까웠다.

 역 주변의 레스토랑을 나온 지 슬슬 십여 분이 흘러가는 차였다. 하마사키 아유미나 우타다 히카루의 그것으로 표상되는 호소력 실린 노랫가락이 열심히 근무 중인 음반 가게를 지나칠 때 예엣, 하고 시시한 경례를 나누는 녀석들은 눈에 익은 특공복 차림이었다. 굳이 형제의 얼굴을 볼 것도 없이 먼발치에서 알아볼 수 있는 개조된 행색을 보고 알아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폭력이든 금력이든 가진 자에게 쉬파리처럼 꼬여 드는 녀석들은 어디에도 있으니, 이 또한 지겹도록 익숙한 범주였다.

 린도는 상대를 눈여겨볼 일도 없이 안경알 뒤에서 짙은 눈썹을 까딱, 내리기만 했다. 3초가 지나기 전, 천축의 똘마니들은 그의 단기 기억 안에서 편리하게 휘발되었다. 결국, 승패의 향방을 가르는 건 굵직한 거두들의 싸움이었고, 거사를 벌이기 위해 토대와 같은 남은 인원이 필요하다손 쳐도 거기까지 할애할 신경은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휙 밀어버린 뒤통수 아래로 꽁지머리를 늘어뜨린 뚱보, 반반 가르마를 탄 채 어설프게 테를 밀어 올린 안경잡이가 그 옆에 선 채, 이미 수십 보 뒤로 멀어져갈 즈음. 목청을 높이기 시작한 SMAP의 곡조, 일제히 날개를 펼친 채 날아가는 흰 비둘기 떼, 이름 모를 시푸른 꽃으로 고이 조경한 보도블록 위의 광경, 도쿄만으로 이어지는 임해 공원 위를 가르는 수상버스 주변에 희게 피는 포말…….

 “따라한 건가.”

 “음?”

 “아까, 그 녀석들.”

 “흐음.”

 “계속 널 보고 있었잖아, 린도. 뭐─.”

 내통이니 뭐니 해도 전혀 쓸모없겠지만, 가볍게 돌아오는 형의 대꾸를 들으며 린도의 미간이 이마 정중앙으로 천천히 모였다. 이미 희석된 송사리 면상이야 생각나는 게 없단 게 솔직한 답 되겠다만.

 반응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그 정도의 이야기로 충분했던 건지. 특공복 소매를 가볍게 턴 란이 휴대기기를 집어 들었다.

 “바이크 엔진 수리도 끝난 모양이고. 보러 갈래?”

 “아니, 갖고 오기만 하면 됐어.”

 “뭐, 그럼 잘 지키고 있어 봐.”

 “형도, 폼 잡긴.”

 멀어지는 등을 향해 린도의 동공이 잠깐 확장했다가, 거슬리는 빛줄기를 받자마자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대화가 소강하자, 그 자리를 무질서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시내의 소음이 비로소 인지된 탓에. 그러나 잠깐의 소란에 할애되었던 주의력은 다시 린도의 안에 갈무리되어, 떠들썩하게 흘러가는 일련의 정경은 곧 그의 고유의 영역 바깥으로 물러났다.

 달아오를 일 없이 체온만 피식 식히고 마는 엷은 볕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이 옅은 구름이 몽글몽글 떠다니는 날씨는 불태울 곳 없는 의욕을 대폭 삭감했다. 마음껏 비틀어도 되는 적의 육신이 이 자리에서 주어지길 바라는 일은 터무니없었기에, 하이타니 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무릎 위에 비스듬히 올라간 반대편 다리가 까딱거릴 때마다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그림자만 제자리에서 흔들거렸다. 하, 의미 없는 한숨으로 말미를 장식할 의향도 들지 않는, 기계적인 매 초의 흐름. 대기하는 내내 세상은 린도의 바깥에서 하염없이 흘러갔다.

 싸움판의 열기와 동떨어진 시시한 일상의 겉면을 고수한 공원은

 아, 찾았다!

 무료한 배경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벌어지는 소란 또한 린도를

 여기야!

 전혀 침범하지 못하는, 통상의…….

 하이타니 씨!

 그런 시시한

 “꺅, 정말이지. 이 가운데에서 찾아내다니!”

 나날의 연장선에,

 “그야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치즈의 생각이 맞지?”

 불과했다.

 “이렇게나 넓은 도시에서 말이야, 하이타니 씨가 여기로 올 것 같아서!”

 

 그러니까 이건, 하이타니 씨가 역 주변의 가게에서 나와서 걷기 전부터의 이야기!

 

 해무리가 하늘을 장식하는 꽃처럼 반짝반짝 피어난 날씨였다. 하이타니 씨의 안경알을 성가시게 두드릴 햇살도 오늘만큼은 얌전하게 굴고 있어서, 마침 기념하기에는 딱 좋은 정도의 쾌적함. 대도시는 개개인의 생활에는 일견 무심해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만큼은 하이타니 린도가 평상시보다 한가한 날을 기해 기상도 선물을 준 날이라고 여겨도 좋을 터였다.

 오늘의 요코하마, 최고 기온은 오후 1시 30분 전후로 예상, 그 이후로는 천천히 식어 마치 온화한 가을을 앞둔 것처럼 체온을 달래줄 온후한 날씨! 낮부터 요리해 본다고 열어 둔 창문 너머에서 불청객처럼 불쑥 불어오는 바람조차, 오늘의 설렘을 더하는 첨단의 데코레이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이노우에 치즈루가 인식하는 이번 날짜는, 또다시 사랑이란 명목하에 엑설런트한 평가 가도를 달릴 준비를 마친 뒤였다. 일어났을 때 살짝 뻗친 머리 방향은, 하이타니 씨의 추정 거주지 방향이니 운수대통! 서랍장 모서리에 긁혀서 하필 소지가 긁혔다는 건, 소중한 여자친구를 뜻하는 손가락에 남긴 흔적이니까 이 또한 러브 시그널♡

 하이타니 씨와 함께 한 나날부터 치즈루의 모든 하루는 절호조를 달리는 ‘클라이맥스의 날’ 카테고리에 사이좋게 들어가 있었지만, 어떤 색으로 장식할지 정도의 어레이션 정도는 있어야 이벤트로 두근거림을 더할 수 있는 법! 침상 밖으로 굴러 나오는 그 순간처럼 행복의 예고장을 받은 사람과 같이, 오늘의 이노우에 치즈루는 두근두근☆함이 평상시의 몇 배에 도달한 터였다!

 중대사를 앞둔 날이니까, 하이타니 씨가 만반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도록. 이쪽에서 사랑의 기합을 넣어 줘야만!─그런 사정으로, 오늘의 부엌은 간만에 그 쓰임새를 다하고 있었다. 칼로리 보충을 위한 고기 튀김, 영양분이 잔뜩 들었다는 연근도 조심조심 잘라서 꽃 모양으로. 비엔나 소시지 끝을 갈라 볶은 회심의 문어는 칼날이 어긋나서 이리저리 흠집이 나 버렸지만.

 어쩌려나, 역전의 증표 같아서 잘 어울리네! 그런 혼잣말과 더불어, 이번 회심의 한 방을 위해 오는 길에 사 온 찬합에는 소담히 식사의 주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그릇 용기는 발품을 팔아 고른 보람이 있어, 새카만 바탕을 가로지르는 하얀 크로스가 필견. 마치 이번의 시도를 돕기 위해 세상에 안배된 법칙과도 같아, 찬합의 남은 칸을 채우던 치즈루에게서 행복한 신음이 잠시 새어 나왔다.

 밥알 위에 뿌린 케첩 하트에, 붉은 심장처럼 중앙에 콕 박힌 방울토마토는 꼭 깔끔하게 씻어서 꼭지 따는 과정을 잊지 말 것. 두툼하게 말린 계란말이와 마요네즈를 듬뿍 올린 사라다까지 빼먹지 않고 한 칸을 꼭꼭 채우고 나면, 하이타니 린도를 위한 특제 도시락, 완성입니다. 사랑을 하는 여자아이를 위한 레이디 어드바이스♡50선에는 풍수와 방위(하지만 과하게 챙기면 올드해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 외에도 행운의 아이템을 챙기는 건 어필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아이(愛)를 곁들여 줄 문어 눈(アイ)도 고민해봤지만, 호러 데코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패스. 대신 칸칸이 챙겨 넣은 아이들(相)은 단일품 없이 바글바글하니까, “하이타니 씨, 오늘은 중요한 날인 거 알고 있지? 오늘도 정말 정말 사랑해!” 맛있어져라~!는 삐삑, 이 시축에는 존재하지 않을 어휘니까, 에러, 에러. 그러므로 넘치는 사랑을 담아서,

 끼익─열린 문 너머로 가볍게 내달리고, 역사까지 달려가는 과정은 하이타니 린도를 만난다는 결론으로 수렴하기까지의 소중하고 소중한 가교, 달콤한 색채로 아니 보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뭐 그렇게, 애정 가득한 눈동자에 차오르는 풍광 하나하나가 두근거림으로 쿵쿵 뛰었다. 마침 정오라는 시점을 지나 해의 위치가 차츰 서쪽으로 이동해가는 시각이란 것도, 서쪽으로 끈질기게 향했던 ‘천축’의 여로와도 딱 맞아떨어지니까. 유별나게 흥이 돋았다.

 출동입니다! 들뜬 폐부를 따라 시원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내지르고 싶은 소리였지만, 치즈루는 그런 메시지를 상기된 얼굴 안쪽에 넣어두기로 했다. 덜컹거리는 전철에 몸을 실은 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비장의 요리를 배달하는 소녀는 그런 경우 없는 짓을 벌이지 않는 법이니까!

 항시 무르익은 상태의 연정 탓이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는 특별한 징조로 가득했다. 치즈루를 실어 나르는 교통편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임해 공원의 평화로운 수면이라든지, 그 위에 뽀얀 구름처럼 시원하게 돋아나는 물살도. 슬쩍 비치는 햇무리를 연상케 하는 맑은 하얀 빛이어서, 고대하는 미소가 한껏 번졌다. 뺨을 가로지르는 상처 자국도 영광의 흔적, 이 적당히 따스한 온도야말로 결전을 앞둔 하이타니 린도와의 시간을 데워줄 적절한 요인으로 여겨졌으니까.

 린도가 이곳으로 온 뒤부터 치즈루가 질리도록 출입했던 요코하마는, 오늘도 명랑한 이국의 색채로 일렁이고 있었다. 치즈루의 행복감은 이 도시의 지치지 않고 팽창하는 활기와, 유흥가를 갖춘 번화한 거리 특유의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새삼 맛보며 주욱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린도와의 만남의 장을 함께 할 행인이 많다는 건 길조로 해석된 탓에. 그야 세상의 환영을 받는 사랑이니까! ……그런 이유로.

 휴대기기가 반짝 울었다. 하트가 두근거렸지만, ‘아직’ 하이타니 린도가 메시지를 자신에게 직접 보내줄 날은 절차를 덜 밟았으니까. 치즈루는 대신 다른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빠르게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과연 예감이 맞았다.

 ‘하이타니 형제, 역에서 움직이고 있잖냐.’

 타인에게 거리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그 품격으로, 애모해 마지않을 수 없는 자태로 활보하고 있겠지! 하이타니 씨의 거취가 바뀌었다면, 알아야 당연한 일이니까. 각고의 노력으로 포섭해 둔 천축의 ‘엑스트라’로부터 온 위치를 확인하며, 콧노래가 더해졌다. 린도를 향해 가는 매 순간은 분할되어, 마침내 치즈루의 의식은 거리의 기물이나 배경 장식 한 단위 단위를 전부 의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이타니 씨에게 가는 길’에까지 할애할 신경은, 언제나 치즈루에겐 무한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야, 린코우 파크다.’ 공원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내내, 손에 걸린 종이 백 안에 든 도시락의 무게가, 그리고 점차 가속되기 시작한 심장의 고동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귓가를 파고들어 오는 행인들의 소란이나, 일상처럼 다가오는 소음은 이제 치즈루에게 있어 만남의 서곡 같은 달콤한 선율에 가까웠다. 휙, 휙, 물감을 늘어뜨린 것처럼 무감히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얼굴조차, 이 고유의 사랑 안에 편입된 것처럼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야 하이타니 씨랑 만나러 가는 길인 걸! 주변의 정경 전부가 이노우에 치즈루라는 개인의 고유 영역 안에 흡수되어, 마침내 사랑을 노래하는 도시, 요코하마를 형성할 기세로. 세상은 린도를 향해 다가가는 그의 한 걸음마다, 그 곱절 이상의 무게로 다감해졌다.

 피부를 따갑게 때릴 일 없이, 몸을 부드러이 감싸는 옅은 빛이 얼굴에 한 줄기 다가왔을 때. 마치 광명을 찾은 사람처럼, 치즈루의 얼굴은 이제껏 지은 것보다 더 환한 미소에 마음껏 젖어들었다. 약 1분 뒤의 하이타니 린도가 바로 눈앞에 있는 풍경을 고대하며 치즈루는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마음껏 고해도 좋은 사랑이 바로 이 자리에 주어져 있었기에, 흔들거리는 백을 고쳐 잡은 손가락은 그 그림자마저 흥으로 풀어낸 것처럼 사랑스러운 윤곽을 빚었다. 후읍,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기합을 넣듯 들어가는 한숨과, 귓가에 쿵쿵거리는 전주를 북돋아 주는 매 초의 흐름. 안경테 뒤로 넘어간 머리카락을 슬쩍 빗어 내리면서, 다리를 비스듬히 꼰 유일의 이름. 하이타니 린도의 상이, 치즈루의 세상 안쪽으로 아낌없이 쏟아졌다!

 “아, 찾았다!” 아직 이쪽을 안 보지만, 하이타니 씨! 좋아한다고 외칠 거야!

 “하이타니 씨, 여기야!” 지금은 이렇게 일일이 품을 팔아 쫓아오고 있긴 하지만!

 “꺅, 정말이지. 이 가운데에서 찾아내다니!” 렌즈 알 너머로 비치는 눈은 무심!

 “그야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치즈의 생각이 맞지?” 그거야말로, 운명!

 이렇게나 넓은 도시에서 말이야, 하이타니 씨가 여기로 올 것 같아서!” 그렇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 무생물을 보듯 스치는 눈길이 저릿했다. 휙 돌아가는 고개의 옆태를 보는 것만으로 애가 탔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하이타니 씨가 사랑해주지 않아서, 따위가 근거로 붙을 수 없었다! 달라, 다르다. 소중하게 하나하나 챙긴 요리를 꺼내 들어서, 그 앞으로 척척 걸어가자마자. 아,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 하이타니 린도가 선 자리로부터 이 공간의 만물은 한 박자로 뛰고 있어,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달려온 거야!

 “하이타니 씨, 봐 봐! 오랜만이지? 하이타니 씨를 위한 도시락. 치즈, 오늘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응, 날씨도 정말 좋고. 꺄악! 어쩔 수 없는 기분이야.”

 인간은 운명의 주인이니까, 세상 모든 필연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라면.

 “정말정말 좋아해, 사랑하고 있어! 하이타니 씨의 중요한 날까지 나, 계속해서 기다릴 테니까. ……싫어하지 않을 거지? 응, 하이타니 씨가 안아주면 기쁠 거야! 어때, 여기에서. 안아줄 수 있어? 아니면 치즈의 도시락, 먼저 받을래?”

 하이타니 씨의 자취를 찾아서, 이렇게 공원에서 만난 거야말로 우리의 운명을 알려주는 이 세계의 흐름이니까!

 “정~말, 치즈의 마음은 완전 러브러브니까! 받아주지 않을 거야? 너무해! 그래도 갖고 올 테니까. 하이타니 씨, 설마 부끄러워 그런 거라든지……하면, 어쩌지! 으응, 그렇게 생각하니까─꺄악! 점점 더 좋아하게 되니까. 하이타니 씨!”

 공원 안에서 열렬히 부르짖는 연가는, 날아가 버린 비둘기 떼의 울음을 합친 데에도 압승! 어느새 소요가 벌어진 이 자리로 다가온 형님이 “아아.” 곤란하다는 듯 내뱉는 한숨도 결국 잠시 페이즈를 나누는 쉼표, 하이타니 씨가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훌쩍 일어나 멀어져가는 것도─.

 “기다려, 하이타니 씨! 치즈, 따라가고 있으니까. 도움이 되는 요리니까, 즐겁게 먹어주면 좋을 거라고? 응!”

 펄럭거리는 특공복을 향해 다급히 토도돗 따라붙는 발걸음 소리. 용담 꽃 색 모양의 머리핀으로 포인트를 준 오늘의 포니테일은 이 마음처럼 일직선으로 쭉 뻗은 채 어깨 위에서 흔들거리고, 때마침 가로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하이타니 린도가 걷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그러니까 이건, 예견된 길이며 예정된 필연!

 하이타니 씨, 분명 좋아하게 될 테니까─!

 그런 멋진 나날이,

 “계속 널 부르고 있잖아, 린도.”

 분명 우리의 앞에,

 “흐음.”

 이미 흘러오고 있고,

 “뭐, 상관은 없나?”

 다가올 테니까 말야!

 “이상한 데서 폼 잡지 마, 형.”

 “기다려─!”

 이 마음이 싹튼(胚胎) 것을 안 뒤로, 줄곧 패퇴(敗退)할 거란 생각 따위 안 했으니까, 워 아이 니(ウォーアイニー)인 거야!

 “하이타니 씨─!”

 요코하마에서 보내드립니다, 사랑의 체열이 끓는점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DAL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