げんきですか
W 자철
차고에 있던 오토바이의 수가 줄었다. 겡끼가 타고 나갔다가 박살을 냈기 때문이다. 엔진을 개조하는 바람에 백 미터 밖에서도 겡끼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배기음은 유리창을 벌벌 떨리게 만들고는 했다. 사고는 사흘 전에 일어 났다고 한다. 정오 쯤 오토바이의 바퀴가 터지는 듯한 강한 폭발음이 들렸다. 하이타니는 직접 내다보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시하기엔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고 얼마 안 가 구급차의 정신 산란한 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그는 인근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닐 놈들은 죄다 제게 인사했음을 알았지만 구태여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후 오늘에서야 그는 차고에 없는 오토바이를 떠올리며 사고를 연상했고 마지막에 겡끼를 생각해냈다. 죽었으려나? 차라리 관절이 꺾여 죽는 게 나을 텐데. 시답잖은 혼잣말을 했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이타니는 죽어도 일렬로 세워놓지 않는 오토바이를 보는데 바빠 겡끼에 관해서도 이내 까먹었다. 여담: 당연히 겡끼의 본명은 겡끼가 아니다.
양키는 양지로 다니지 말란 법이라도 있는 거야? 늘 하자 있는 놈들이 투덜거리는 법이다. 겡끼의 다음 타자로 들어온 놈이 겁도 없이 지껄였다. 하이타니는 그놈과 꽤 거리를 둔 채 시멘트벽에 등을 대고 있었다. 겡끼 2는 어설픈 솜씨로 피어싱을 뚫은 탓에 귓불 전체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하이타니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말라가는 입술을 축이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어젯밤 물이 반쯤 남아 있던 페트병이 발치에서 굴렀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경박하게 움직이며 물을 찾지 않았지만, 그의 눈앞에 불쑥 물병이 납셨다. 찾던 페트병은 아니지만 투명한 물이 텀블러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물을 내민 사람의 손톱 위에도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젖병 같은 걸 텀블러로 들고 다니는, 손톱은 유리처럼 반질거리는 여자. 이런 특징으로 여자를 특정하진 못 하지만 하이타니 린도가 몇 번 고갯짓을 했다고 물을 내미는 여자는 역시 도쿄에 한 명이었다. 이노우에 치즈루는 반지르르한 얼굴로 물을 꿋꿋하게 내밀었다.
목말랐지? 하이타니 씨가 어떤지 나는 다 알아. 여기 물이 있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긴 한데 차가운 게 좋으려나? 아니면 뜨거운 물? 뭐든지 가져다줄 수 있어. 뭐가 좋아? 하지만 저번에는 냉수도 온수도 싫어했는걸. 그렇다면 역시 정수가 아닐까 생각했어. 오늘 목마를 줄 나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왜냐면 나는 하이타니 씨를 정말로 좋아하는걸. 계속 좋아하다 보면 뭘 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어. 방금도 바로 알아차렸다구. 그렇지? 맞지? 역시 하이타니 씨에게는 치즈루가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좋을 텐데. 아니야, 이미 필요하지? 그러고 있는 거지? 목소리가 겡끼 대신 들어온 놈보다 더 까랑거렸다. 남자는 턱을 괴면서 귀 한쪽을 막았다. 남자가 듣기 좋게 치즈루 안에서 깎아내고 두드린 음성이었지만 하이타니에게는 매한가지인 목소리였다. 이노우에는 특히 하이타니 앞에서 따발총처럼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사랑이 넘쳐나 생겨난 버릇이었지만 남자는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는 거슬린다고 말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이득일지 가늠했고 언제나처럼 후자를 택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좋았다. 빌어먹게도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말라왔다. 그는 텀블러를 뺏듯이 채 와서 뚜껑을 열어 갈증을 해결했다.
마시라고 달린 뚜껑은 제 역할을 못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먼지 사이에서 굴렀다. 이노우에는 아무렇지 않게 굴면서 뚜껑을 주워들었다. 뚜껑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늘도 러브 스탯이 착실히 쌓이고 있었다. 린도의 변화를 한치도 놓치지 않는 자신! 린도는 역시 제 물병을 들어 갈증을 해결했다. 누가 봐도 순조로운 연애 전선이었다. 제가 가져온 물이 남김없이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는 걸 바라봤다. 그가 가진 고민과 슬픔과 고난을 오로지 제힘으로 해결하다니. 누군가를 소유하고자 했던 날들이 불어날수록 자신이 점유 당하고 있었다. 응응. 이게 러브 파워랬어. 치즈루는 어젯밤 창밖에서 린도를 닮은 구름을 보며 느꼈던 벅찬 사랑을 다시금 품는다. 린도는 갈증을 해결한 덕에 심기가 누그러졌다. 텀블러는 다행히 땅을 구르지 않고 바로 치즈루에게 안착할 수 있었다. 하이타니는 ‘이거’의 이름을 명확하게 기억해낸다. 하지만 금방 휘발된다. 차라리 겡끼를 생각하는 게 더 나을 일이다. 그는 겡끼의 대타가 오두방정을 떠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시 이거나 저거나 거슬린다는 판단만을 중첩해나간다.
갑자기 폭발해버린 오토바이가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