きらきら

リップグロス

W 자철

 

 

 

 chEEz네코님에게 추천해 드리는 오늘의 LIP! 촉촉한 글로스가 주는 매끄러운 광택에 빠져 보세요. 추운 겨울날 글로스 하나면 립밤도 필요 없죠. 좌르르 한 핑크와 오팔 펄이 립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저번 주에 추천해 드린 장밋빛 블러셔 모음.zip과 함께라면 더욱 청순 point up! 애인(こいびと)의 키스를 다섯 번 넘게 부르고 싶다면? 지금 바로 클릭!

 

 상아색 화장대 앞에 앉은 치즈루는 머리카락을 풀어 어깨 뒤로 넘긴 채 앉아 있었다. 막 씻고 나와서 촉촉해진 뺨과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은 어떤 첨가물도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온수로 몸을 녹여 붉게 물든 양 볼이 더욱 화사한 색으로 변한다. 왼뺨을 할퀸 흉이 조막만 한 얼굴의 유일한 흠이었으나 본인에게는 가장 마음에 드는 구석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하이타니 린도가 치즈루에게 남긴 첫 발자국이었다. 순결한 땅은 짓밟힐수록 지저분해진다고 하지만 하이타니로 인해 이미 진창인 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치즈루는 린도를 생각하며 링크를 클릭한다. 눈두덩이가 깊고 입술이 도톰한 모델의 입 위로 색색깔의 립글로스가 덮여 있다. 6가지 옵션 중 가장 입자가 큰 펄이 들어간 제품으로 구매 버튼을 누른 뒤 소리 죽여 웃는다. 하지만 웃음이 걷힌다. 재고 없음. 오늘 핸드폰으로 확인한 오하아사가 생각난다. 12위! 행운의 컬러는 레몬. 오늘 걸친 잠옷은 늘 입던 레몬색 원피스가 아닌 연분홍 슬립으로 매끄러운 원단이 특징인 옷이었다. 이럴 순 없어! 짧게 비명을 지른 이노우에는 재고가 있는 매장을 확인한다. 다행히 학교와 가까운 매장에 남은 재고가 있었다. 그는 하교 후 구매하기로 마음먹는다. 자기 직전 화장대를 둘러보니 쓸 만한 립글로스는 일절 없다. 키스를 다섯 번 넘게 부르고 싶다면? 문구가 아른거린다. 반드시 가져야만 했다.

 

 하이타니 린도. 치즈루는 하이타니를 하이타니 씨라고 부른다. 린도 씨로도, 하이타니로도 넘어가지 못한 애칭은 자못 애처롭다. 이런저런 이점을 노린 호칭이라도 해도 마음속으로는 샛길로 새기 마련이다. 그는 하이타니를 부르는 데에도 정성을 쏟았다. 허투루 부르지 않았고 여러 후보군 가운데 하나를 꼽아 (속으로) 부르는 식이었다. 첫 번째 후보로는 베이직하게 1. 린도가 있었다. 린도. 일본인에게 허락받는 이름이란 관계의 진전이다. 사업상 관계를 뛰어넘어 어떤 내밀한 사이로 발돋움하게 되는 시초다. 어떤 미사여구 없이 이름을 부르고 있자면 치즈루 안에 하이타니가 가득 차곤 했다. 허례허식 없이 웃고 떠들고 옆자리에 바짝 앉아 발을 흔들어 댈 수 있는 사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호칭을 불렀을 때 하이타니가 비난인지 한탄인지, 혹은 쑥스러움인지 모를 말을 하길 원했다. 가령, 여자애들은 사람 이름을 얌전히 부르지 못한다는 뉘앙스로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시 귀여운 걸 보는 듯한 눈일 테다. 낯설지만 싫지는 않다는 듯 묘하게 웃는 얼굴로 말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말투는 또래 남자애들처럼 어쩌지 못하고 건들거리겠지만 바로 그 점이 좋았다. 따라서 두 번째 후보는 2. 린도꿍이다. 군은 심심하고 쿤은 날카로웠다. 꿍은 적절하게 양극단을 줄다리기하는 느낌이 좋았다. 하이타니에게 너무 귀여운 호칭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누가 감히 하이타니에게 귀여움을 잔뜩 묻혀 부를까. 여자친구인 자신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빠르게 나오는 세 번째 후보는 3. 린짱 내지는 린도짱이다. 치즈루는 여러 호칭 중 결국 린짱을 채택했다. 여자애들에게 붙이는 짱을 하이타니에게 붙일 만한 거리감이라니. 이보다 더는 가까워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그를 매료시켰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하이타니가 자신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고민하게 됐다. 물론 하이타니가 뭐라고 부르든 치즈루는 행복하겠지만 상상과 망상만은 여자아이의 달콤한 특권이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이노우에’다. 치즈루가 하이타니를 하이타니 씨라고 부르듯이 하이타니 역시 그를 이노우에라고 부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정중함이라는 편차가 있긴 하지만 이노우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정중은 좋은 단어지만 자신과 하이타니 사이로 들어오면 거리감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뿐이다. 그렇다고 ‘씨’를 붙이는 그가 남자를 밀어낸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이타니라고 부르는 괄괄한 여자애보다 하이타니 씨라고 살며시 말하는 여자애가 좀 더 귀엽기 때문이다. 어쨌든 치즈루는 이름을 이용한 다양한 애칭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치즈루라고 불러줘도, 치즈라고 말해도 좋았다. 더 나아가 치치라고 부른다면…. 상상만으로 이미 하이타니가 모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탄 ‘치치’가 된 기분이다. 치치는 하이타니의 너른 등에 얼굴을 묻어 억센 강바람을 피하겠지. 구름이 없는 덕에 저무는 해는 세상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제일 좋은 건, 등인데도 린짱의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 들린다는 거다. 그럼 자신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 세상을 응시한다. 장소와 시간을 까먹고 일몰을 일출로 착각해버린다. 해가 영원히 수평선에 머물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다. 등에 기댄 얼굴을 살짝 들었다가 린짱이 위험하다고 하는 말에 다시 달라붙는다. 찰나에 치즈루는 검은 갸쿠란에 살짝 스친 입술이, 남긴 흔적을 발견한다. 반짝이는 펄. 노을에 반사돼 제각각의 색을 내는 립글로스가 길 잃은 불빛 같다. 그것들은 마음속에서 불량식품처럼 톡톡 터지기 시작하다가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잔상을 남긴다.

 

 반드시 사야겠어! 확고한 마음과 함께 상념에서 깨어난다. 자꾸 머릿속에 피어나는 망상들을 내쫓자 수마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다가온다. 몽롱해진 정신 속에서 치즈루는 내일 일정을 차근히 준비한다. 무리하지 않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교복을 입어야지. 빳빳하게 다림질한 교복은 언제나 보기 좋게 옷걸이에 걸려 있다. 린짱은 아침을 거르고 나오니까 샌드위치를 가져가야지. 그는 하이타니를 비밀리에 배웅하고 있기에 집 앞까지 마중 나가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만나려면 언제부터 나가 있는 게 좋을까. 어제는 자신이 1분이나 늦어버려 하마터면 하이타니를 놓칠 뻔했다. 자신이 옆에 없는 린짱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혼자 걸어가는 린짱은 고독하고 멋있었다. 사랑에 빠지기 어렵지 않은 남자다. 절대 옆자리를 양보할 수 없었다. 하이타니의 검은 갸쿠란에 립글로스를 묻힐 사람은 이노우에 치즈루였다. 뺨에 남은 상흔의 주인은 치즈루가 아니라 하이타니였다.

 

 반드시 나의 린짱인걸!

 

 

 

 

 

DALBOM